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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르께스따 띠삐까.. 사대천왕은 누구?

hugjun 2013. 6. 27. 00:47

안녕하세요? 까를로습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질문을 했는데 세 분께서 응모를 하셨더군요.

근데 정답이 뭐냐구요? 그럼 함께 알아보죠.

 

 

1920년대 중, 후반부터 30년대 초반 그리고, 중반까지 수 없이 많은 오르께스따 띠삐까들이 구성되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보통은 2, 3 짧게는 음반 하나 없이 몇 달 만에

 

또한, 까나로(F. Canaro), 피르뽀(R. Firpo), 로무또(F. Lomuto), 프레세도(O. Fresedo) 등과 같이 꾸준한 활동을 하던 오르께스따도 실은, 30년대에 가서야 비로서 그 구성원면에서 안정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

 

첫째, 신흥 Musico(무시꼬:뮤지션, 이후 무시꼬)들의 지속적인 등장(Pugliese, Troilo, Gobbi 기타 등등)

둘째, 오르께스따의 연주를 듣고자 하는 수요의 증가(Cafe 혹은 Bar)이에 부응하는 꼰훈또(그룹)구성

마지막으로, 오르께스따(무시꼬)의 해외 진출 및 순회 공연(Fresedo, De Caro, Canaro ) 그리고, 몇몇 무시꼬의 해외 잔류(J. C. Cobian, Canaro형제 기타 등등)

 

그런데 안정적인게 그렇게 중요한가?

답은 한마디로 그렇다.

 

안정적이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서 구성원의 변동이 적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자신이 속한 오르께스따에 만족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보수 혹은 연주 면에서)

 

3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생성된 오르께스따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그 생명이 길어지고, 그 중 유명한 오르께스따의 대부분이 그 디렉또르가 세상을 달리할 때까지 함께 한다.

 

 

40년대를 전후(황금기)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오르께스따의 디렉또르를 조금 나열하면(성 알파벳순)

Rodolfo Biagi(로돌포 비아지 이후 Biagi) ,

Miguel Calo (미겔 깔로 이후 Calo),

Francisco Canaro(프란시스꼬 까나로 이후 Canaro),

Angel DAgostino(앙헬 다고스띠노 이후 DAgostino),

Juan DArienzo(후안 다리엔쏘 이후 DArienzo),

Alfredo De Angelis(알프레도 데 안젤리스 이후 De Angelis),

Julio De Caro(훌리오 데 까로 이후 De Caro),

Lucio Demare(루시오 데마레 이후 Demare),

Carlos Di Sarli(까를로스 디 사를리 이후 Di Sarli),

Edgardo Donato(에드가르도 도나또 이후 Donato),

Roberto Firpo(로베르또 피르뽀 이후 Firpo) ,

Osvaldo Fresedo(오스발도 프레세도 이후 Fresedo),

Alfredo Gobbi(알프레도 고비 이후 Gobbi),

Pedro Laurenz(뻬드로 라우렌스 이후 Laurenz),

Francisco Lomuto(프란시스꼬 로무또 이후 Lomuto),

Pedro Maffia(뻬드로 마피아 이후 Maffia),

Osvaldo Pugliese(오스발도 뿌글리에세 이후 Pugliese),

Enrique Rodriguez(엔리께 로드리게스 이후 Rodriguez),

Ricardo Tanturi(리까르도 딴뚜리 이후 Tanturi),

Anibal Troilo(아니발 뜨로일로 이후 Troilo)

기타 등등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30년대 중후반(DArienzo, Rodriguez, Calo, Tanturi, Laurenz, , DAgostino, Troilo ) 혹은 후반(Biagi, Demare, Pugliese, Di Sarli )  그리고 40년대 초반(De Angelis, Gobbi ) 각자의 오르께스따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된다.

 

황금기를 소개하는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오르께스따 띠삐까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데

그 인기는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몇몇 오르께스따(DArienzo, Di Sarli, Pugliese, Troilo )팬클럽이 있었고, 연주할 때마다 그들이 몰려 다녔다고 한다.(트럭 등으로 이동)

 

그 당시 은행원의 월급 150뻬소 정도였는데 인기 있는 오르께스따의 무시꼬는 기본이 250에서 300뻬소였다고 한다. 특히, 디렉또르, 깐딴떼(가수), 꼼뽀지또르(작곡가) 등은 더 많이 벌었다는

 

인기 가수(Castillo, Martel, Moran )가 노래할 땐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추던 춤을 멈추고 무대 쪽으로 이동했다. Pugliese와 함께 노래했던 A. Moran(알베르또 모란)의 경우 그가 노래를 할 땐 많은 여자들이 팬티에 오줌을 지렸다나...(70대 수업 같이 받던 할머니 여학생(?)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

 

그 시절 오르께스따가 호랑이라면 깐딴떼(가수)를 그 호랑이에 달린 날개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Fiorentino(피오렌띠노), Rufino(루피노),를 선두로 Maure(마우레), Podesta(뽀데스따), Beron(베론), Vargas(바르가스), Campos(깜뽀스), Moreno(모레노), Ortiz(오르띠스), Chanel(차넬) 기타등등

 

일반적으로 오르께스따 띠삐까에 대해 얘기(설명)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4대 오르께스따를 언급한다.

DArienzo, Di Sarli, Pugliese, Troilo

이는 그들이 그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뚜렷이 구별되는 그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장기간(최소 2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얻은 점과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가였으며(DArienzo가 이 부분에선 조금 약하지만 대신 그는 항상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 등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4대라는 표현은(?) 십년이 지난 훗날 그 누군가가 의해 사용이 되어 현재 설명의 한 방식처럼 쓰고 있을 뿐 그 의미가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니 4대 천왕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한 달 전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생에게 30년대 오르께스따의 인기에 관해 물어 보면서 4대 오르께스따 얘기가 나왔는데.. 내게 이렇게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4개의 오르께스따를 얘기해 볼래?

 

난 평소(Biagi부터 얘기하는데)와는 다르게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DArienzo(춤 추기엔 가장 무난하니까)

Di Sarli(Rufino Podesta 너무 좋아)

Troilo( Fiorentino 그를 뺄 순 없지’)

그리곤 잠시 침묵.(아.. 힘들다’) .

 

 

4대 오르께스따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개를 얘기하면 나머지들은?. 하고 내게 되묻는다.

 

그때서야 다시 깨달았다.

맞어@@ 예전엔 항상 이렇게 대답했는데30년대 40년대 거의 모든 오르께스따의 특정 시기를 좋아한다고…’

 

여러분의 4대 천왕은?

 

 

Tanguero Carlos en Bs.As.

 

., 아즈라엘, 그리고 안쏘니

세 분 다 정답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 선물로 F. Canaro con R. Maida(까나로와 마이다) Poema(뽀에마) 오리지날 CD를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취향도 변하더군요.

한국에서는 Pugliese, Di Sarli(con Duran) 중 주로 50년대 이후 녹음된 곡들, De Caro

여기 온 첫 해 2004년에는 Calo(con Beron), DAgostino(con Vargas), Goyeneche(con Troilo), Tanturi(instrumental) 등등.. 주로 가수 위주로

작년에는, Biagi(con Ortiz), Troilo(con Fiorentino), DArienzo(con Maure), T. Victor, Pugliese(초창기), Fresedo, Di Sarli(con Rufino, Podesta) 기타 등등.. 다시 오르께스따 위주로

2006? 큰 변화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때 그때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듣는 정도^^

 

6 24일이 Carlos Gardel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날이었는데 이번엔 월드컵 열기로 평소와는 다르게 지낸 듯 합니다.

다음엔 가르델을 기리는 의미로 그의 얘기를 할까 합니다.

출처 : 라틴속으로
글쓴이 : 까를로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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